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걸프 전쟁 (문단 편집) ===== 미군의 전쟁범죄인가? ===== 당시 미공군은 '''퇴각하던 병력'''에 폭격을 가한 것이고, 이는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 큰 비난에 직면했다. 러시아의 중재 하에 이라크군은 일시적 평화협정을 맺었고, 그 사이에 이라크군과 군무원 가족 등 수천명의 군민들이 대놓고 퇴각하고 있었던 것을, 당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부전자전|후세인의]] [[조지 W. 부시|블러핑이다]]'라고 일방적으로 무시한 후 폭격을 명령해, 수천명의 이라크군과 이라크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바그다드는 이라크 외무 장관이 러시아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여, 유엔의 의결 안에 따라 모든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도록 명령을 받았으며, 1991년 2월 26일 ~ 27일(시리아 2월 27일 오전 0시)에 걸쳐 밤, 임시 휴전으로 많은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이 바그다드를 향해 이동중이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철수중인 이라크 군을 철저하게 청소하라고 미 공군에게 명령한 것이다. 당시 미국 입장에선 그 직전에 이라크의 발악적인 스커드 공격으로 막사가 직격당해 수십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 때문에 복수심에 눈이 돌아간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서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고 전의를 상실한 채 귀환하려는 적군을 일방적으로 학살한게 아니냐는 비난이 확산되자, 미군은 이라크군이 중무장한 상태였고 투항 의사 없이 대공무기로 반격한 것이라 반박했다. 당시 백악관에선 무방비 상태의 대살육극을 벌였단 식으로 여론이 전환될까봐 상당히 전전긍긍했고 2월 27일에 파월 장군이 슈워츠코프 장군에게 확전 자제를 명령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추악한 것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콤 라가체는 쓰고 있다. 이것이 "뉴스 데이(뉴욕 신문)"에 폭로되었을 때, 모두가 놀랐다. 미국 상하 양원 군사위원회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공격의 세부 사항을 위원회에 비밀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 4년 후,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은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변론했다. >쿠웨이트에서 북쪽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폭격 한 첫 번째 이유는, 고속도로에 대량의 군장비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지휘관, 이라크 군 장비를 최대한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집단은 일반 시민이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쿠웨이트 시내에서 폭행과 약탈을 반복했었던 [[전쟁범죄|흉악범 및 살인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포되기 전에 국외로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